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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기는 일상

방탄소년단 RM도 반한, <크리스티앙 볼탕스키 : 4.4> - 부산시립미술관, 이우환 공간

이우환과 그 친구들 III 《크리스티앙 볼탕스키 : 4.4》

2021-10-15~2022-03-27

부산시립미술관, 이우환 공간

 

 

크리스티앙 볼팅스키 : 4.4 부산시립미술관

 

나는 집순이다. 우리 집, 내 침대가 세상에서 가장 좋은. 하지만 종종 집을 나설 일이 생기는데 대부분은 한두 장의 사진 때문이다. 꽂히면 가야 한다. 오늘도 그런 이유로 집을 나가보려고 한다. 오늘은 춥고, 또 멀리 가야 하기 때문에 약간 귀찮기도 하다.

부산시립미술관에는 아주 오랜만이다. 아마도 고등학교 시절 숙제를 위해 방문했던 것이 마지막이 아니었나 싶다. 이 곳에는 여러 가지 전시가 열리고 있지만 내 관심사는 두 가지, 이우환 공간과 크리스티앙 볼탕스키 : 4.4

이우환 작가님은 내가 이름을 기억하는 거의 유일한 우리나라 현대 화가다. 이유는 파란색 선이 시원스레 그려진 그림, 선으로부터. 언젠가부터 눈에 콕 박힌 이 그림은 의미도 알지 못하지만 내 마음속을 차지하고 있다. 아마도 선을 이룬 파란색이 너무나 예뻐서가 아닐까 싶다.

 

이우환 공간 가는 길 사진


미술관 본관을 거쳐 이우환 공간에 가는 길. 길에는 방향을 가리키는 팻말과 마른 나무가 서있다. 나에겐 이것이 하나의 작품처럼 잘 어울려 보였다. 그 뒤는 커다란 돌과 철판이 만들어낸 작품의 공간. 나는 그냥 지나치다가 '작품'이라고 해서 걸음을 멈추고 말았다. 그냥, 작품이라고 해서.

이우환 작가님의 작품은 촬영이 금지되어 있기 때문에 눈에만, 마음에만 담을 수 있었다. 의외로 '점으로부터'에 사로잡혔고 역시 이유는 파란색이었다. 파란 점들이 너무 예뻤기 때문에. 캔버스를 채우기 시작했을 진한 점은 점점 흐릿해지고, 다시 진해지고를 반복한다. 왜인지 그것이 너무 예뻐서 한참을 바라봤다.

흰 사각형 안에 그려진 세개의 선. 그것 역시 짙게 시작하여 어느새 흐려진다. 그 그림은 어딘가 그 사각형 안에 갇힌 것 같아서 안타깝다. 어렴풋이 자유분방해 보였던 선들은 내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어느 무엇보다 자유로운 '바람과 함께'는 물속을 유영하는 잉어 떼처럼 보여서 잠시 웃었다.

나무를 끌로 쪼아 만들어졌다는 '쪼으기' 역시 걸음을 멈추게 했던 작품. 편편한 나무판 두 개는 끌의 흔적으로 가득하다. 이우환 작가님은 본연의 모습에 집중하고자 했다고 하지만 나는 쪼아진 그 모습에 어쩐지 생명 같다고, 그렇게 느꼈다.

 


이우환 공간 안에 마련된 작은 숍에 여기에 다녀갔다는 방탄소년단 RM의 메시지가 놓여있었다. 아마도 나를 포함해 많은 이들의 방문 이유가 되었을 작은 액자를 찍는 한 커플을 보며 나도 찍어보았다. 찰칵.

 


이우환 공간보다 더, 나를 이곳에 오게한 것은 크리스티앙 볼탕스키 : 4.4 전시였다. 물론 전시 중 한 작품. 볼탕스키 님의 작품은 이우환 공간과 본관으로 나뉘어 전시되고 있었는데 가장 먼저 만난 작품은 '영혼'이다. 하얀 벽면 위로 어쩐지 흐리게 뿌려지는 어린아이들의 얼굴 사진. 나는 그것이 무섭게 느껴졌다. 어른이 되기 위해 우리 안의 어린이는 죽을 수밖에 없다는 오디오 클립의 설명을 듣지 않고도 그것은 나에게 살아있다는 느낌보다 죽음에 가까웠다.

(참고로 이우환 공간에 전시된 작품은 오디오 클립의 37~39에 해당한다. 본관에 전시된 작품부터 설명이 시작되니 관람시 참고하면 좋을 것 같다.)

 


그 다음은 '황혼'으로 이어진다. 바닥에 널브러진 전선과 전구들의 모임인 이 작품은 어쩐지 허망하다. 전시기간을 상징하는 165개의 전구들은 하루에 하나씩 꺼진다고 한다. 내가 방문했을 때는 그래도 꽤 많은 전구가 불을 밝히고 있었다. 전시가 끝나는 날 누군가 암전이 된 작품의 사진을 올린다면 기분이 색다르지 않을까.

관람은 본관으로 이어졌다. 어쩐지 불편한 동선이다. 굳이 불편한 점을 더 짚고 넘어가자면 오디오 클립이 몇 번인지 어디에 쓰여있는지 몰라서 확인하기가 힘들고 제목이 따로 기재되어있지 않게 때문에 찾아 듣지 않으면 확인하기 힘들었다. 그리고 동선 표시가 없었다.

 


3층에 올라가면 전시의 제목이 써진 흰 벽과 함께 작품 '출발'이 눈에 띈다. 어쩐지 전체적인 전시와 어울리는 듯 어울리지 않는 붉은 불빛의 두 글자를 지나치면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듯한 작품들이 이어진다.

 


한쪽 벽면에 높게 매달린 파란 전구빛 가운데 코트는 그것을 우러러보게 한다. 양쪽 공간에 배치된 영상은 그것을 바로 보고 있기 힘들다. 의도한 바든 아니든 나는 금방 발길을 돌려 나왔다.

 

다음 작품은 '심장'. 공간에 들어서기 전부터 그것의 박동소리, 일편 기차소리처럼도 들릴만큼 우렁찬 소리가 들리고 깜빡거리는 전구 둘레로 검은 거울들이 붙여져 있다. 그 공간에 머물면 작가의 심장소리와 내 것이 조금 닮아가는 것이 느껴진다. 얼굴이 비치지 않는 거울을 마주 서있자면 나의 존재가 사라져 가는 느낌도 든다.

 


한 벽을 가득 채운 옷가지들은 시선을 압도한다. '저장소:카나다'라는 이 작품을 꽤 기대했었다. 방탄소년단의 RM이 찍은 인증샷에서 너무나 인상적이었기 때문이다. 사진 속의 작품은 아우슈비츠에 쌓여있는 신발더미를 떠올리게 했다. 생생히 남아있는 죽음의 흔적들이 어떤 충격을 전해져 줄지 기대했다. 그런데 의외로 작품은 삶의 생동감 같은 것이 느껴져서 그것은 그것대로 좋았다.

 


나에게 죽음을 전해준 것은 따로 있었는데 다른 방에 있던 '탄광'. 까맣고 주인을 잃은 옷들이 산처럼 쌓여있는 이 작품은 어딘지 슬프다. 같이 전시된 다른 작품과 함께 비현실적이고 신비한 느낌을 전하기도 한다. 한편으론 샤머니즘을 연상시킨다.

 

 

촬영이 서툴러 종소리가 녹음되지 않는지도 몰랐다...

음소거로 화면만 감상하시길


안쪽 방에는 '아니미타스'라는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칠레에서는 사막 고속도로에서 목숨을 잃은 사람들에게 헌정된 이름이라고 한다. 화면 속에서 바람이 불고 종이 움직여 치유의 소리를 연주하면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다. 이 소리를 공유하고 싶은데 아쉽게도 종소리가 녹음되지 않았다.

크리스티앙 볼탕스키 작가님의 작품에 사용된 사진들은 하나같이 죽음을 연상시킨다. 어딘지 흐리고 어둡고 지나버린 옛날을 떠오르게 한다. 조금 두렵게도 느껴져서 일부러 빨리 지나치기도 한다.

평일 이른 낮시간이지만 관람객은 꽤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어떤 느낌을 받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