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 읽는 일상

<나는 네Nez입니다> 김태형

나는 네Nez입니다 표지

 

<나는 네Nez입니다>를 처음 들었을 때는 'Nez'가 쏙 빠진 '나는 네 입니다'라는 제목이어서 혼자 '예스맨이라는 이야기인가?' 생각했다. 하지만 검색을 해보니 프랑스어로 Nez인 '코'라는 뜻이었다. 직역하면 코지만 조향사라는 뜻으로도 널리 쓰인다고 한다.

 

나는 향을 좋아한다. 지금은 귀차니즘+멀미의 탓으로 향수를 뿌리지 않지만 예전에는 향수 없이는 외출하지 않을 정도로 애용하기도 했다. 하지만 다양한 향수를 수집하거나 한 것은 아니고 단순히 향을 좋아했을 뿐이다.

 

저자인 김태형씨는 프랑스 ESP와 ESIPCA에서 향수를 전공한 조향사이다. 이 책은 주로 저자의 유학시절과 저자가 만근 향에 대한 에세이를 담은 1부와 향수와 관련된 용어를 정리해둔 2부로 나뉘어있다.

 

사실 1부의 에세이는 나에게 별다른 감흥이 없었다. 문인인 저자의 부모님을 닮아 잘 적힌 에세이.. 그 정도의 느낌이랄까. 에세이에는 많은 향기가 등장한다. 아쉽다. 책으로는 향기를 전달할 수가 없으니 말이다. 책이 향기를 전해주는 기술이 있었다면 이 책에 대한 느낌은 많이 달랐을 것이다.

 

유학시절의 일부를 보낸 골목의 냄새, 학교가 있던 동네의 역에서 풍기던 지린내, 학교 입구 바로 옆에 피어있던 라일락꽃의 향기, 사랑했던 연인의 살 냄새, 연인의 체취를 떠올리며 만들었던 향과 연인을 위해 선물한 장미 다발의 향기. 그 향기들만으로도 이 책은 하나의 선물 같았을 것이다.(지린내는 빼자)

 

오히려 내 눈을 사로잡은 것은 2부의 향수와 관련된 용어들이었다.

 

후각은 신경세포가 뇌와 직접 연결된 유일한 감각기관이다. 그중에서도 감정적 기억을 다루는 아미그달Amygdale을 우선적으로 거친다. 이로 인해 우리가 후각을 통해 상황을 인지할 때 다른 감각보다 수배는 빠르게 추억이나 기억을 불러올 수 있으며 그에 딸린 감정들까지 되살아나게 된다.



후각은 기억을 불러오기에 가장 빠른 방법이다. 나같이 기억력이 떨어지는 사람에게도 추억의 일부분을 떠올릴 수 있게 해 준다. 교토의 노포에서 맡았던 고소한 갓 튀긴 튀김의 냄새와 타이베이의 사찰에서 눈이 따갑도록 강렬했던 향냄새 같은 것들, 누군가에게 칭찬을 들었던 한 향수의 잔향과 첫사랑에게서 맡았던 섬유유연제의 냄새. 저자의 표현을 빌자면 '향수의 핵심은 연결'일 것이다. 향이란 누군가와, 어딘가와, 그 언젠가와 지금의 나를 연결해준다.

이 책을 읽고 나에게는 가고 싶은 나라가 생겼다. 프랑스. 누군가에게는 로망의 나라겠지만 나에게는 별 흥미없는 그저 유럽의 한 나라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제는 나에게도 하나의 위시리스트가 되었다. 언젠가 향수의, 향기의 나라에 가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