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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는 일상

<세상 어딘가에 하나쯤> 유희경

 

세상 어딘가에 하나쯤 표지 사진

 

 

'세상 어딘가 하나쯤'이란 것은 특별한 것일까 평범한 것일까. 제목을 들을 때마다 궁금해졌다. 누군가는 특별한 것이라는데, 나에겐 더없이 평범하게 느껴졌다. 세상 어딘가에 하나쯤은 있다는 말이니까.

이 책은 시의 표현이 군데군데 묻어있는 산문집이다. 아쉽게도 나는 책, 특히나 시와는 인연이 없어서 읽어본 시집도 없고 외우고 있는 시 한 편도 없을 정도다. 유희경 시인님의 이름도 이 책으로 처음 접했다. 당연히 시 한 줄 읽어본 인연도 없었다.

 

 


시인에 대한 환상은 조금 있다. 말수가 적지만 수려한 말솜씨에 침착하고 지적인 냄새가 폴폴 날 것 같은 사람. 내가 잘 마시지 못하는 커피를 하루 종일 마시면서 글을 쓸 것 같은 사람들.

어쩌다 이 책을 읽게 되었는가 하면 이게 다 시인과 서점에 대한 환상 때문이라고 해야겠다.

 

 

 

나는 주로 전자책을 읽는다. 종이의 촉감이나 팔랑거리는 소리를 들을 수 없다는 점이 안타깝지만 가방 속 공간을 차지하지도 않고 무게도 더하지 않는다는 점이 마음에 든다. 어디서나 마음만 먹는다면 책을 읽을 수 있다.

어렸을 적에 도서관에서 일하는 미래를 꿈꾸기도 했다. 한참 글이라는 것에 빠졌던 때의 이야기다. 도서관에서 느껴지는 책 냄새와 많은 사람들 속에서 집중이라는 나의 세상에 빠져드는 감각도 좋아했다. 그때는 내가 이렇게 책과 담쌓은 사람이 될지 몰랐지. 어쩌면 서점지기라는 것은 도서관 사서의 사적인 버전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헤드레스트가 있을 것. 가끔 잠들어야 하니까. 아무도 없는 서점. 한없이 지루한 책. 이따금 마음고생시키는 방문객. 이런 상황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을 때. 하지만 도망칠 수 없으니까. 책을 펼쳐 얼굴을 가리고. 그러니 한껏 뒤로 기울어질 줄도 알아야 하는 것이다. 몸의 무게를 견딜 줄 알며 그렇다고 완전히 드러눕는 것은 아닌 모양으로. 그건 너무 나태해 보일 테니까. 찾아온 이가 놀랄지도 모르는 일이지. 팔걸이는 꼭 필요하다. 서점지기의 일이란 책상 위에 놓여 있는 법이다. 손을 올리고 키보드를 두드리거나, 자르고 붙이고 넘기거나, 적는다. 이런 일에 팔을 의탁할 수 있는 무언가는 필수적이지. 때로 무언가 꾹 참을 때에 기대고 붙잡을 필요 역시 있다. 상황에 따라 높낮이를 조절할 수 있다면 금상첨화겠지. 바퀴는 필수적이다. 언제든 일어나고 도로 앉아야 할 일이, 서점에는 참 많다. 시집을 찾아 건네거나 제자리를 찾아 꽂아두거나 커피를 내리고 설거지를 할 때에도 벌떡 일어나 일이 벌어진 자리로 찾아가야 한다. 그럴 때마다 의자를 끌어내고 당길 수 없거니와 이리저리 굴러가서도 안 될 일이다.

 

의자를 고르는 일은 생각거리가 많은 일이다. (위의 글은 서점지기의 의자를 고르는 부분이지만) 시인은 서점을 찾는 이를 위해서도 편안한 의자를 욕심껏 들였다고 한다. 자리를 내어주는 마음이 이렇듯 고맙게 느껴진다. 어딘가에 내 자리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든든한 일인가.

귀여운 초등학생이 찾아오는 일요일, 가게 앞에 수북이 쌓인 나뭇잎을 쓰는 일 같은 것은 내가 부러워하는 부분이다. 아이도, 몸을 움직이는 것도 좋아하지 않는 내가 왜 부럽다는 마음이 들었는지 모르겠다. 내가 앉아 지킬 자리가 있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지 궁금하다.

 

 

 

의외로 눈물 흘리는 사람들이 많이 등장해서, 나는 많이 놀랐다. 감정에 솔직한 사람들을 좋아하는 것이 무색하도록 나는 감정이 파도치는 것을 즐겨하지 않는다. 언제나 잔잔한 나 자신을 유지하는 것이 당연하고 익숙한 일이라 그것이 웃음이든 울음이든, 또는 분노 같은 것이든 감정적이 되는 것을 지양하고 있다. 표현은 지극히 사적인 것이라 그것이 드러날 때는 혼자이길 바라는 것이다.

그런데 누군가가 있는, 그것도 친밀한 사람도 아닌 서점의 주인이 있는 공간에서 눈물을 흘리는 사람이라니. 그것이 종종 일어나는 일이라는 것이 더욱 놀라웠다. 여러모로 신기하고 다양한 서점지기의 일상이다. 시집을 사서 주위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는 사람, 힘든 하루의 끝엔 이불을 뒤집어쓰고 시집을 읽다 잠드는 사람, 문병 선물로 시집을 고르는 사람 같이 나와는 많이 다른 이들과 닿아있는 일상이 너무나 궁금하다.

 

 

 

세상에. 이 시인이자 서점지기인 아저씨는 귀엽기까지 하다. 나는 이 문장을 읽고 웃지 않을 수 없었다. 강아지도 고양이도 아닌 나무 네 그루의 이름이 너무나 깜찍하기 때문이다. 시인님의 위트에 나도 모르게 웃음을 흘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니 재미있기도 한 분이다.

 

 

 

책을 읽다가 서점에 있다는 기린 인형이 궁금해져서 굳이 인터넷을 켜 검색해본다. 없나 싶어 포기하려는데 우습게도 서점 인스타에 떡하니 올라와있었다.(SNS는 안 쓰는 나란 사람..) 예상치 못한 모습에 잠시 갸우뚱했지만 이 애가 맞는 것 같다. 기린이 맞나 싶은데 아무리 봐도 목이 길쭉한 것이 맞겠지 싶다. 역시... 시집 서점은 기린도 만만치 않다는 생각에 피식 웃음이 났다. 하얀 곰인형 웅이도, 조그만 알파카 인형도 구경했다. 가본 적도 없는 위트앤시니컬에 나도 모를 애착이 피어오른다.

아마도 기린인 인형의 사진이 올라와있는 SNS

 

 

 

요즘 읽고 싶은 책이 늘었다. 나에게 글이란 것은 신비로워서 친구들을 끌어당겨 소개해준다. 이 글은 어때? 이 책은? 저 책이 흥미롭지 않아? 관심이 없을 때는 몇 달이고 들여다보지 않던 책 소개 페이지도, 전자책 서점 홈페이지도 요즘 하루에도 몇 번씩 들락거리는 것이다. 그리고 위시리스트를 한껏 채워두고 있다  당분간 글을 읽게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