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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 일상

[해리단길] 감각적인 소품샵 - sentiment studio 센띠멍 스튜디오

바람이 살랑살랑 부는, 나에게는 살짝 더운 봄 날씨. 어째 가는 곳마다 오랜만이지 않은 동네가 없다고 생각하며 버스에서 내렸다. '나 정말 집순이구나. 최근에나 좀 돌아다녔지 그 전엔 집에만 있었네.' 새삼스레 나 자신에게 놀란다. 세상 궁금한 것도 없고 가보고 싶은 곳도 없었나 보다. 이렇게 세상은 많이, 빨리 바뀌었는데 나는 뒤쳐지고 있었다.

 

해리단길이니 뭐니 들어는 봤지만 올 일이 전혀 없어서 나에겐 초행길. 지도로 보면 멀게만 보이는 길도 실제 걸어보면 코 앞인 경우가 허다하다. 여기도 그런 곳 중 하나. 버스에서 내려 5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센띠멍 입구 사진

 

길가에 자리한 까만 아웃테리어의 센띠멍. 활짝 열린 문과 하얀 벤치가 나를 반겨준다. 꽤 넓은 곳일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좁아서 조금 놀랐다. 어떤 곳은 예상보다 크고, 또 어떤 곳은 예상보다 작다. 당연한 말이지만 그게 유독 크게 다가오는 곳이 있기 마련이다.

 

사진을 찍어도 좋다는 기분 좋은 승락과 함께 어깨에 걸친 무거운 가방끈을 고쳐 맨다. 짐이 한껏 들어있는 무거운 가방이지만 구경에 크게 방해가 되진 않는다. 다행히 두 손은 자유로우니까 사진을 편하게 찍기도 하고 물건을 들고 유심히 볼 수도 있다.

 

 

들어가자마자 창가에 자리한 테이블 위에 눈을 끄는 물건들이 있다. 유난히 우아하게 생긴 집게도 그렇지만 어린 시절 사서 쓴 기억이 있는 종이비누가 들어있을 것만 같은 패키지의 낯선 물건이 그것이다.(그런데 요즘도 종이비누가 나오는지 모르겠다. 요즘 친구들은 그런 거 알기나 할까?)

 

민트색, 핑크색, 하늘색의 조그맣고 납작한 패키지의 이 물건은 심지어 냄새도 좋다. 테이블 근처에서 풍기는 좋은 향기는 이 것 덕분인 모양이다. 샘플 제품을 하나씩 들어 향도 맡아본다.

 

파피에르 다르메니 안내문 사진

 

파피에르 다르메니라고 부르는 이것은 쿠폰북 형태의 종이향초라고 한다. 처음 보는 신기한 제품이 호기심이 동한다. 종이'향초'이니 태워도 된다. 벤조인 성분이 있어 일주일에 3번 정도 피우면 감기 예방에 도움이 된다니! 뭐 이런 신기한 게 있지? 킁킁거리며 세 가지 다 시향한 뒤 가장 마음에 드는 아르메니아(하늘색)을 고른다.

 

이 종이향초는 향이 꽤 강해서 방에 두면 굳이 태우지 않아도 강한 존재감을 뽐낸다. 몹시 겁이 많아서 아직 태워보지는 않았는데, 방 전체에 아르메니아의 상쾌한 향기가 가득하다. 예민한 사람이라면 좀 강하다고 느낄 수 있을 정도의 향이니 환기는 필수다.

 

아쉬운 점은 센띠멍의 온라인 스토어에는 파피에르 다르메니를 판매하지 않는다는 점과 가격이 착한 편은 아니라는 것. 아무래도 오프라인이니 어느 정도는 이해가 된다.

 

 

엄청나게 다양하다고는 못하겠지만 센띠멍에는 여러 가지 문구류가 있는데 그 쓰임새는 차치하고 디자인이 무척 감각적이다. 진열되어있는 모습도 그런 느낌을 더하는 포인트라고 생각한다. 깔끔한 벽면, 테이블, 그 위에 놓인 컬러풀하고 질서 정연한 오브제. 마치 미술품 전시장에 온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센띠멍의 세상에는 조명도 정말 예쁘다. 내 기억에 이 조명은 판매용이 아니었던 것 같은데 맞는지는 모르겠다.(윗 사진은 플라워팟 조명은 판매용이었다.)

 

 

사진에선 약간 잘려나왔지만 마음에 들었던 클립보드. 컬러도 너무너무 예쁘고 탐이 났지만 쓸 일이 별로 없을 것 같아서 눈물을 머금고 내려놓았던 물건이다. 짙은 녹색의 A4 사이즈의 녀석이 지금도 눈에 밟힌다. 그런데 센띠멍의 온라인 스토어에는 왜 이렇게 내가 탐내는 물건은 하나도 없는 걸까?

 

 

소품샵에서 빠질 수 없는 다이어리와 노트도 다양하게 준비되어 있다. 내가 다이어리를 쓰는 사람이라면 탐이 났겠지만 나는 MBTI로 따지자면 파워 P형 인간이라 다이어리를 사면 일주일도 채 쓰질 못하기 때문에 사면 절대(절대!) 안된다는 사실을 그간의 경험을 통해 뼈저리게 알고 있다. 그동안 사서 거의 새 물건인 채로 방치된 수많은 다이어리들을 생각해서라도 또 다른 희생양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일념으로 눈을 돌렸다.

 

센띠멍의 엽서꽂이 사진

 

엽서와 카드가 정갈하게 꽂혀 있었는데 정말 심플하고 정직한 디자인에 반했다. 예쁜 일러스트 엽서도 사랑하는 편이지만 깔끔한 컬러 위에 메시지만 적힌 것이 너무 간결하고 예쁘지 않은가? 아무래도 센띠멍의 물건 셀렉하시는 분과 나는 취향이 도플갱어처럼 같은 모양이다. 메시지 카드 외에 일러스트 엽서도 하나같이 내 취향이었음은 말할 필요도 없다.

 

 

소품샵 센띠멍의 특별한 점이라면 그냥 포스터가 많은 것이 아니라 액자가 많다는 점이다. 포스터의 수로 따지자면 더 많은 곳을 숱하게 봤는데 이렇게 액자로 판매하는 곳은 처음이었다.

 

 

가운데의 데이비드 호크니 작품 액자가 정말 마음에 들었다. 2011년 열린 데이비드 호크니의 전시 'Me Draw on iPad'를 기념해 발행한 전시 포스터라고 한다. 색감이 화려하고 아름답다는 느낌이다.

 

내 방에 그림, 사진 같은 것을 거는 것이 꿈이긴 하지만 아직 여건이 되지 않기도 하고 산다한들 아직은 걸 수도 없기 때문에 구매할 수가 없었다.(물론 가격이 착하지 않았던 점도 있다.)

 

 

센띠멍의 전체적인 느낌이 미술관처럼 느껴졌던 이유는 역시 액자가 많아서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천장에 매달린 조명을 맞고 있는 액자들을 보면 정말로 내가 미술관에 온건가 싶은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센띠멍의 액자 프레임 샘플 사진

 

이분들 액자에 진심이시구나 싶은 것이 이렇게 프레임도 고를 수 있게 되어있었다. 그다지 넓다고는 할 수 없는 공간인데도 이렇게 샘플을 두고 고를 수 있게 한다는 것이 진심이 아니라면 무엇이 진심이겠는가?

 

그렇게 긴 시간을 둘러본 것은 아니지만 자신만의 큐레이션이 멋지다고 생각했던 소품샵 중 한군데이다. 이런 곳이 있다는 건 정말 즐거운 일이 아닐까? 센띠멍 스튜디오는 그 공간에 머무는 시간을 즐겁게 만들어주는 곳이었다.

 

 

 

※ 위치 및 정보

 

 

부산 해리단길(우동) 소품샵 : sentiment studio 센띠멍 스튜디오

매일 12:00-19:00

 

 

 

* 이 후기는 내돈내산으로 체험 후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