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금한 것이 있다. 다른 사람도 구미가 당기지 않는 도시가 있을까? 어떤 나라에 꽤 유명하고 다른 이들은 아주 좋아하는 도시가 있다. 나는 그 나라에 여행, 혹은 살아보고 싶은 마음도 있다. 하지만 유독 마음이 동하지 않는 도시가 있는데 바로 그곳인 경우. 다른 사람도 그런 도시가 있을까?
나의 경우는 몇군데가 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도쿄다. 일본은 몇 번이나 다녀왔고 사실 도쿄도 업무차 가본 적은 있지만 개인적인 여행으로는 전혀 구미가 당기지 않는다. 내 이전 회사 동료는 도쿄를 무척 좋아해서 여러 번 다녀왔다는데 나는 그 매력도, 장점도 딱히 알지 못한다.
그럼에도 이 책을 기꺼이 구매한 것은 '아직'이라서. 물론 '아직'의 뒷말이 부정적인 것이 수도 있겠지만 그 도시를 제목으로 책을 쓸 정도면 좋아한다는 뜻일테니 긍정적인 말이 올 가능성이 높을 것이라 생각했다. 뭐, '과연 내가 도쿄를 좋아하게 할 수 있을까?' 하는 심술궂은 마음이 동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 작가님은 아직이라는 말을 좋아해서 필명이 '아직 임진아'일 정도라고 한다. '아직'에 끌린 나와 '아직'이 너무나 좋은 작가. 뭔가 독특하고 특별한 만남이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작은 가게를 방문했을 때, 그리고 그곳이 마음에 들었을 때는 좀 더 오래 그곳을 구경하고 싶어진다. 오래도록 느긋하게 시간을 쏟아 하나하나 눈 둔 곳을 기억하고 싶다. 그곳이 집에서 먼 곳에 자리한 경우에는 더 그렇다. 내가 이곳을 좋아하고 있다고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은 오래 머무는 것, 그뿐이다.
MBTI로 따지자면 나는 P타입이라 보통 계획적인 것과는 거리가 먼 사람인데 이상하게 여행만 가면 굉장히 계획적인 사람이 된다. 여행을 확정한 순간부터 갈 곳을 고르고 숙소를 예약하고 일정을 짜는데 시간을 들인다. 계획 없이 돌아다니는 것도 가능하긴 하지만 왠지 불안하다. 일정을 정리한 것을 보고 다음 목적지 가는 방법을 검색하며 바쁜 걸음을 옮기는 여행자는 이런 여유로움이 부럽다.
여행 중에 다음 여행을 계획해본 적은 없지만 만약 그런 일이 생긴다면 그것은 그 장소가 무척이나 마음에 든다는 뜻일 것이다. 여행했던 곳을 다시 찾는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니까 분명 정말로 좋았던 곳이라야 다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동네 산책을 하다 강아지와 함께 찾을 수 있는 카페가 있다면 너무 기쁠 텐데. 작가가 그려낸 나카무라 커피점은 딱 그런 곳이어서 나조차도 방문해보고픈 생각이 들었다.
폐점한 이전 킷사의 잔을 사용하고 있는 재즈 킷사의 이야기는 어딘가 뭉클하면서도 감동적이다. 다분히 일본적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우리라고 그러지 못할게 뭔가 싶으면서도 정서적으로,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조그맣게 곁들여진 그림으로 작가가 경험한 그 시간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어서 행복한 시간이었다. 마냥 글로 적힌 것을 상상하는 재미도 있겠지만 실존하는 장소와 존재했던 시간은 역시 사진, 또는 그림이 있는 편이 좋다. 글을 읽으며 '아, 맞아 그림에 이런 게 있었어!'하고 페이지를 되돌려 그림을 되짚어보는 과정은 분명한 즐거움이었다. 이 귀여운 그림들을 공유하고 싶다. 종이책이었다면 사진으로 찍으면 그만인데 이북은 그 점이 번거롭다.
밥 한번 먹어요, 얼굴 한번 봐요. 쉽게 하는 인사말이 부담스러워지는 성격, 그리고 나이.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는 공감을 얻었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인사치레로 해야만 하는 순간도 있지만 빈말을 좀처럼 못하는 성격이라 내가 하는 이 인사말들은 거의가 진심이다. 하지만 상대도 꼭 그런 것은 아니니 부풀었던 나의 기대는 오래된 맥주 거품처럼 쉽게 꺼지기 마련이다. 그래도 기대해보는 것은 상대에게 나의 진심이 닿기를. 당신과 시간을 함께 보내고 싶어요.
작은 쟁반에 커피, 아니면 맥주, 그리고 먹을 것을 올려 가끔은 서서 시간을 보내야 하는 가게, 베르크가 있다. 어디를 가든 편안함이 최고의 덕목인 나는 상상하기 힘들지만 꽤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는 곳이라고 한다. 그곳은 어떤 사람들이 어떤 마음으로 찾는 곳일까? 단순히 커피를 파는 곳을 찾자면 눈만 돌리면 보이는 곳이 카페인데. 반드시 그곳이어야 하는 마음을 알아보고 싶은 생각도 슬쩍 생긴다.
작가님은 양이 작은 사람인 것 같다. 종종 식사를 '들이붓는다'는 표현을 쓰는데 과연 식사가 즐겁기는 한 걸까 싶은 의문이 든다. 적어도 나에게 들이붓는다는 표현은 섭취를 할 때 사용되는 표현 중 즐거움을 뜻할만한 단어는 아니다. 이런 표현을 쓰는 사람이 맛집이랄지 가보고 싶은 음식점을 찾아다니는 것이 신기하기만 하다. 맛보는 것 정도는 좋을 수도 있겠구나. 혼자 곰곰이 생각해본다.
여행을 하고 보면 '자유'가 새삼 와닿는다. 내가 무슨 연예인도 아니고 우리나라에서도 자유분방하기만 한데 아는 사람이라고는 없는 외국에서 누리는 것은 또 다르다. 차원이 다르다고 해야 할 것 같다. 나를 내려놓는 자유로움이라는 것을 만끽하게 된다(물론 다 내려놓으면 안 된다). 아마도 내가 혼자 여행하는 것을 좋아해서 더 그런 것 같지만 누군가와 함께 한 여행에서도 어느 정도는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낯설다는 것이 주는 자유가 이토록 달콤하다는 것을 다른 이들도 느꼈으면 좋겠다.
돌아가고 싶은 그 시절 하나쯤 누구에게나 있지 않을까. 아니면 현재가 너무나 소중하고 행복해서 과거로는 돌아가고 싶지 않을까. 입 밖으로 내뱉지 않지만 나도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 가능하기만 하다면. 어느 시절인지 정확히 정하진 않았지만 막연한 그 시절로 말이다. 나는 너무 과거에 매달리는 사람인 걸까?
아이와 아이를 키우는 여성을 환영하는 빵집의 책방이 있다고 한다. 유모차를 끄는 사람을 위해 문턱이 없는 상냥한 서점. 아이는 미래라고 하는데 그들을 위한 배려는 사실 쉽지 않다. 나만해도 아이를 좋아하는 사람은 아니니 만일 내가 나만의 가게를 운영하게 된다면 경우에 따라 노키즈존을 염두에 둘 것 같다. 시끄러움이나 아이에 따라오는 엄마들의 까탈스러움은 차치하고라도 안전상의 문제가 따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방은 기꺼이 두 팔 벌려 아이와 그 엄마를 환영한다. 쉽지 않은 게 아니라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의 배려와 환영은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가 있다. 아이들과 그들을 키우는 부모는 결국 우리 자신이고 우리와 함께 하는 존재라고. 꼭 생각해봐야 할 문제다.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것을 깊숙이 해본 적은 없지만 늘 설레고 기쁘면서도 어딘가 두려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학창 시절 내내 배운 영어도 짧게 배운 일본어도 이제는 간단한 인사조차 어려운 수준이지만 배운다는 것이 기뻤다. 어떤 나라 말에는 그 나라의 생각에 담겨있다. 사고방식이 우리와 비슷하면 비슷한대로 다르면 다른 대로 흥미롭다.
마음을 뜻하는 코코로는 꽤 좋아하는 일본어 단어인데 거기에 강하다는 쯔요이를 붙여 든든하다는 뜻이 된다는 건 처음 알았다. 마음이 강해진다는 뜻이니 든든하다는 것과 잘 맞는 것 같다.
지금은 폐점한 돈가스 가게가 내용에 포함되어있다. 어, 뭘까. 여행정보서적이었다면 불합격을 외쳤을만한 일에 잠시 머리가 띵해졌다. 그래. 이건 여행정보를 전하는 책이 아니라 에세이였다.
심지어 소개된 돈까스 가게는 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손님에게 호통치듯 말하는 음식점이라니, 아무리 맛있어도 싫으니까. 나라면 얼른 기억에서 지워버리고 싶을 일을 담담히 웃으며 추억할 수 있다니, 작가님에게 존경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책을 읽는 내내 쏟아지는 작가님이 좋아하는 것들의 정보에 아득해진다. 이 사람은 어떻게 이렇게 많은 것을 좋아하며 살 수 있을까. 무언가를 좋아하는 것은 시간과 정성이 든다. 이렇게 많은 것들에 자신의 관심을 쏟으며 살 수 있는 사람이 신기하고 부럽다. 나의 관심은 허무하기 짝이 없어서 창문을 열어놓은 방에 피어오른 연기 같다. 금방 생겼다가 순식간에 사그라든다. 나도 진득하게 무언가에 빠져들고 싶다.
그런데 이 책에는 작은 단점이 있다. 가끔 띄어쓰기가 잘못된 문장이 눈에 띈다. 나는 맞춤법이나 띄어쓰기에 예민한 편은 아닌데 워낙 눈에 잘 들어오게끔 잘못되어있다. 따뜻하고 좋은 글들이기에 작은 흠도 없었으면 하는 마음에 조금 안타까웠다.
읽는 내내 마음이 따스해지는 글과 그에 잘 어울리는 그림. 빛이 쏟아져 들어오는 창가에 앉아 따뜻한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책을 읽는다면 이런 느낌일까 생각해본다. 감정이 풍부하고 좋아하는 것이 많은 어느 그림작가님의 도쿄 여행을 엿본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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