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전히 변덕스러운 마음으로 이 책을 읽기로 하고 이 작가님의 글을 읽은 적이 있었나 떠올려본다. 워낙 유명한 분이니 들어본 작품이야 있지만 읽어본 것이 있나 싶었는데, 있었다. 친구의 강력추천으로 읽었던 <연금술사>다. 어땠냐고 물어본다면 '내용이 뭐였더라?'라고 말할 것이 분명하다. 누군가에겐 인생책이 나에게는 그저 그런 책 한 권이 되는 이런 이상한 세상. 친구가 느꼈던 감동을 똑같이까지는 아니더라도 나도 느껴보고 싶었는데 아쉬움만 가득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왠지모를 기대를 하게 하는 이름이니까. 어디서 많이 본 듯한 그림이 떡하니 그려진 표지에 적힌 이름, 파울로 코엘료는 과연 어떤 마법의 순간을 선사해 줄 것인가? 기대하면서 읽기로 마음먹어본다.
첫인상은? 어라, 그림이 움직여. 마치 처음으로 움직이는 이미지를 본 것 마냥 놀랐다. 당연하다. 책에서 움직이는 이미지를 본 것은 처음이니까. 궁금해서 종이책은 이걸 어떻게 표현하고 있는지 검색도 해 보았다. 당연히 멈춰진 그림으로 인쇄되어있다. QR코드로 매번 찍어가며 보기엔 너무 짧은 그림이고, 그림은 너무 많다. 그래도 e북과 종이책의 느낌이 너무 다를 텐데 걱정이다(그걸 네가 왜?).
화산같이 타오르던 사랑이 어느 순간 식어버려 차갑게 돌아서던 이의 뒷모습을 본 적이 있다.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이별을 고하던 그 얼굴을 본 뒤로 사랑에 빠지는 것이 두려웠다. 이 사람도 나를 사랑한다고 했던 입술로 헤어지자는 말을 할까봐. 하지만 그것으로 괜찮은 걸까. 사랑받은 기억이, 따스한 마음을 함께 나눈 추억이 있으니 없느니 보다 낫다고 말할 수 있을까.
다른 사람의 아픔을 다독이는 것보다 행복을 함께 기뻐해주는 것이 어렵다고 느낄 때가 있다. 분명히 나는 이 사람을 좋아한다고 생각하는데도 그 사람의 행복, 행운에 뒤따르는 나의 까만 마음에 나 자신을 자책했다. 오히려 이 사람이 어려울 때 내가 느낀 것은 같은 아픔이 아니라 나만 힘든 것이 아니라는 위안이었음을 깨달았다. 스스로의 위선적인 모습에 실망하면서도 나도 누군가의 행복에 함께 기뻐해 줄 수 있음을 느끼고는 안도하는 마음을 갖는다. 정말로 어려운 것은 누군가의 행복을 빌어주는 것이라고, 나는 느끼고 있다.
불가능하다는 걸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항상 바라는 것이 있다면 모든 이들이 나를 사랑해주는 것. 쉽게도 '모두를 만족시킬 수 없다'고 말하지만 내면에서는 그것을 원한다. 영원히 포기할 수 없는 걸까?
고등학교 시절 같은 무리의 친구 하나가 나를 싫어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사춘기를 겪고있는 10대 소녀에게는 당연히 큰 상처가 되었다. 이유는 아주 보잘것없는 것이었지만 내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지금이라고해서 누군가가 나를 싫어한다는 사실을 상처받지 않고 받아들일 수 있을까. 아마도 답은 아니요. 주변의 모두에게 사랑받는 것이 단단히 잘못된 일이라고 해도 나는 꿈꾸고 원한다. 그것은 나 자신이 상처받기를 원하지 않는 마음에서 온다.
세상일을 있는 그대로 본다는 것은 인간이라면 불가능할 것이다. 누구나 생각과 상황이라는 것을 가지고 있으니까. 똑같은 말을 들어도, 똑같은 상황을 겪어도 결국은 각자가 겪어온 과거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인다고 들었다. 모든 사람이 세상일을 있는 그대로만 볼 수 있다면 아마 세상은 아무런 오해도 없지 않을까. 하지만 모두가 제멋대로 세상을 바라보기 때문에 조금은 즐거워지는 거라고 생각한다.
대체 이 '당신'은 행동을 하는 주체인가, 그 행동을 보고 있는 사람인가. 그런 쓸데없는 의문을 일으키는 이 문장을 읽으며 묘한 위안을 얻었다. 누군가에게는 시간낭비처럼 보일지라도 나 스스로를 웃게 할 수 있다면 그것은 시간낭비가 아니라고.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일에 가치를 부여해주는 말에 조금은 마음이 놓였다.
언제나 말을 조심하고 있다. 말을 많이 하지 말고 조심해서 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의도치 않은 말과 행동으로 누군가에게 상처 주는 것은 사절이다. 스스로가 아무리 노력해도 누군가는 나 때문에 상처를 받겠지만 그런 사람을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다. 말로 천냥 빚을 갚을 재주는 없으니 새로운 빚이나 지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 나의 작은 바람. 어쩌면 내가 잘 상처받는 사람이기 때문에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일까.
무조건 줄이는 것이 좋은 일은 아니겠구나 하는 것은 최근 들어 생각하는 것. 적어도 감사의 말, 사랑의 표현은 아끼지 않아야한다는 것을 깨달아가고 있다. 나이 들어가는 부모님과 내가 사랑하는 푸딩이 뿐만 아니라 그 누구에게라도 꼭 해야 하는 말이 있다는 것을 알아가고 있다. 하지만 내뱉기가 쉽지 않아서 늘 입안을 맴도는 말들. 오늘도 하지 못한 말들이 내 안에 쌓여만 간다.
점점 새로운 것이 버거운 나이가 되어간다. 누군가에게는 그것이 30살이 될 수도 있고, 또 다른이에게는 60이나 70, 혹은 80이 될 수도 있다. 마음먹은 대로 뚝딱 되는 일이라면 좋으련만 가끔은 온몸이 거부하는 것 마냥 입구에서부터 입장 불가 판정을 받기도 한다. 무엇이든 신기하고 즐거운 어린아이 같을 수는 없다고 해도 받아들일 수 있게 노력이라도 하는 어른이 되고 싶다.
학창 시절에 내가 잘하는 것을 적으라고 하면 나는 늘 펜만 만지작거릴 뿐 종이를 채울 수가 없었다. 도무지 잘하는 것을 찾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대체 얼마나 잘해야 잘한다고 할 수 있는 건지 기준을 알고 싶기도 했다. 딱 부러진 기준이 있다면 내가 무엇을 잘하는지 확실히 알 수 있을 텐데.
꿈이란 것이 마냥 내가 좋아하는 것일 수 없다고 생각하게 된 나이 이후로는 내가 잘하는 것을 찾지 못한다는 사실이 많은 좌절을 안겼다. 잘하는 것은 없는데 못하는 것은 왜 이렇게 잘 보이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런 생각 속에서 잠시나마 떠올랐던 목표조차 바스러졌다. 나는 꿈이 없었으므로 꿈을 이루기 위해 사는 것이 무엇인지도 몰랐다.
좀비가 많은 요즘 같은 세상, 다행히 내 주변에는 좀비가 별로 없다. 약간 촌스러워 보여도 사람을 대하고 있는 동안만큼은 휴대폰을 내려놓고 대화에 집중하는 사람이 좋다. 상대를 앞에 두고 휴대폰을 붙잡고 있는 것은 상처가 된다. 나와 함께하는 것이 지루한 것은 아닌지, 내가 그 사람에게 충분히 매력적이지 않은 것인지 생각하게 만든다. 그러니 함께 있는 사람이 소중하다면 휴대폰은 잠시 내려놓는 것이 좋다.
인생도, 요리도 맛보는데 인색하기 짝이 없다. 내 입안에 새로운 것을 넣는다는 두려움이 새로운 즐거움을 찾는 행복을 이기지 못하는 순간이 너무나 많다. 하지만 그 순간만 넘겨보면 이것은 맛있을 확률이 훨씬 높다. 내 앞에 있는 요리는 이미 누군가 맛을 보고 선별한 재료와 레시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인생도 마찬가지라서 내가 온전히 맨 처음이 되는 일은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이 맛보기는 너무나 두렵다. 처음 한 조각을 입에 넣는 일, 그 두려움을 넘어서야만 새로운 맛을 즐길 수 있는데도 말이다.
8백만에 이르는 팔로워를 거느린 파울로 코엘료의 트위터에 올라온 글들을 선별하여 카툰을 더해 출간된 이 책은 빠르게 읽자면 30분 정도면 다 읽을 수 있을 정도로 활자가 많은 책은 아니다. 하지만 분명히 한줄한줄이 가진 힘과 울림이 있다. 모든 글에 내가 공감한 것은 아니지만 분명 읽고 생각해볼 만한 글이라고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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