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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기는 일상

문성식 개인전 <Life 삶> - 국제갤러리, F1963 + <어서 오세요, 고양이 식당에>

F1963의 배치도

 

F1963은 좁지 않은 공간이고, 나는 길치다. 이건 필연적으로 그 일이 일어난다는 징조다. 나는 길을 잃었다.

Yes24 중고서점을 나와 복순도가도 발견하고, 테라로사도 봤는데 대체 국제갤러리는 어디인가? 한참 지도를 보며 고민하다가 뒤를 돌아섰는데 국제갤러리가 거기에 있었다.

 

 

갤러리는 어쩐지 선뜻 들어가기가 어렵다. 나와는 거리가 아주 먼 듯한 느낌이지만 오늘은 가기로 마음먹었으니 굳은 다짐을 하고 문을 연다. 다행히 직원분들은 나를 별 신경 쓰지 않는다. 걱정처럼 나를 제지하거나 쫓아내지도 않았다. 당연한 일이다.

갤러리 입구보다 안쪽에 있는 데스크에서 A4용지 2장을 챙겼다. 팸플릿 대신인 듯 국문과 영문으로 준비되어 있었다.

작은 캔버스 위에는 그림이, 선이 빼곡하다. 두껍게 바른 유화 위에 연필로 바탕을 긁어내어 그린 그림이니 이 선들의 재료는 연필이고 연필의 느낌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첫 번째 작품과 마주 서면 누군지 모를 사람의 얼굴을 바라보며 짙은 그리움을 느낀다. '엄마, 엄마, 엄마'라고 제목 붙여진 이 그림에는 나의 엄마와는 조금도 닮지 않은 누군가가 그려져 있지만 엄마라는 단어가 주는 힘이 있다. 연필로 긁힌 유화는 엄마의 주름처럼 보인다.

 

 

날카로운 나뭇가지 위에 동글동글한 꽃이 피어있는 그림이 있다. 꽃을 피운 매화나무다. 내가 보기에 문성식 작가님이 그린 꽃 중 가장 현실과 닮아있는 꽃이다. 매화가 피면 곧 봄이 온다. 요즘 우리 동네에도 매화나무에 꽃이 피기 시작했다.

 

 

캔버스를 빼곡히 채운 조각난 선들. 건물의 벽돌임이 분명한 그 선들 사이로 네 명의 사람이 등장한다. 제목을 보고 나도 모르게 웃었다. '협상'이다. 제목과 그림의 매치가 너무나 유쾌해서 좀 웃겼다.

 

 

잎사귀와 꽃을 모두 떨어뜨리고 앙상하게 남은 '겨울나무'. 봄의 화사함도, 여름의 풍성함도, 가을의 화려함도 없지만 소박하고 깨끗한 분위기를 지녔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 나무는 너무 뾰족해서 마치 벼락 맞은 나무를 연상시켰다.

 

 

기분 좋은 웃음을 띄고 꼬리를 만 채 잠든 고양이 '안나'가 있다. 미소가 너무나 사랑스러워서 나는 사진을 찍어 남기기로 했다. 분명히 좋은 꿈을 꾸고 있을 것 같다.

 

 

몇 안 되는 색채를 가진 작품 중 '그냥 삶'이 있다. 민트빛을 바탕으로 꽃을 피운 가지 위로 까만 거미줄이 드리웠다. 안타깝게도 그 위에는 나비가 걸려있다. 나비는 연필로 긁어 그린 것이 아니라 따로 붙인 것 같다. 어딘지 흐릿한 느낌의 그림 위로 유독 선명한 나비가 도드라진다.

 

 

흐드러진 연한 분홍빛 벚꽃 뒤로 여자는 뒤돌아 멀어진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는 남자가 있다. 화창한 맑은 하늘도, 수줍은 꽃물이 든 꽃송이도 그 남자에게는 슬픔이다. 박진영의 '대낮에 한 이별'이 떠오르는 장면이다.

 

 

맑은 하늘빛 위로 흰 꽃이 피어있다. 예상치 못했는데 '목련'이었다. 색깔은 벚꽃을 닮았는데 가제 위로 달린 꽃봉오리는 목련의 그것이었다. 문성식 작가님의 '피는 꽃'은 하나 같이 목련의 꽃봉오리를 닮아있었다.

 

 

버드나무를 닮아 땅을 향해 늘어진 가지 위로 팝콘 같은 흰 꽃이 피었다. '능수벚꽃과 가족'이다. '능수'는 벚꽃이 아니라 버들 아닌가? 인터넷에 찾아보니 나오긴 하는데 수양벚나무로 더 많이 불리는 처진개벚나무가 아닌가 싶다. 이건 차치하고 벚나무 아래로 다섯 사람이 있는데 그들은 가족인 모양이다. 제각각 꽃구경에 바쁘다. 한껏 꽃을 피운 벚나무를 배경으로 가족사진이라도 찍으면 좋은 추억이 될 텐데, 아쉽다.

 

 

'봄밤'이다. 흐린 밤하늘에는 달이 떠있다. 모양을 보아 초승달이다. 어두운 밤하늘에 빛처럼 밝은 것은 분명 목련이다. 가지조차 희게 그려져서 마치 꼬마전구가 불을 밝힌 듯하다. 밤하늘의 빛깔이 너무 마음에 들어서 '봄밤'을 배경으로 못 찍는 셀카도 찍어본다.

 

문성식 개인전 <Life 삶>은 꽤 많은 작품이 있지만 관람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국제갤러리 자체도 넓지 않은 편이다. 작품에서는 작가님의 애정 어린 시선이 느껴진다. 일상적인 소소한 풍경들이 작가님의 애정을 만나 작품이 되었다. 작품과 제목이 만나면 유쾌함이 배가되니 팸플릿의 제목과 작품을 확인하며 감상하면 더 즐거운 감상이 될 것 같다.

 

 

 

※ 위치 및 정보

 

 

문성식 개인전 <Life 삶>

2021-12-09 ~ 2022-03-31

국제갤러리, F1963

 

 

 

+

 

전시회를 보기 전 Yes24 중고서점에 들렀다. 구매할 생각은 없었고 그저 오랜만에 서점 구경이나 할까 해서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그런데 서점 중간쯤에 작은 사진전이 열리고 있었다.

 

 

어서 오세요, 고양이 식당에(이용한 글•사진)

2022-03-01 ~ 2022-04-14

Yes24 중고서점, F1963

 

 

 

"인간이 망가뜨린 이 세상이 그래도 아름다운 건 고양이가 있기 때문이지."

 

 

아주 귀여운 생물들의 사진과 코멘트가 걸려있었다. 사진전이라고 적힌 공간 안에만 전시 중인 것에 아니라 서점 곳곳에도 사진들이 있었다.

 

 

나는 고양이 인간보다 강아지 인간에 가깝지만 모든 귀여운 생물에 약하기 때문에 넋을 놓고 구경할 수밖에 없었다. 혹시 이곳을 방문한다면 고양이들의 사랑스러움에 푹 빠져보시길.

 

 

마음이 말랑말랑해진 나는 예상에 없던 책을 구매해버렸다.(사진전과는 무관한 것이지만)